이번 다이스 타이니 타운은 PNP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만들게 된 게임이다. 재작년 보드게임긱에서 PNP 솔리테어 공모전을 우연히 알게되고 참여하면서, 나의 첫 게임 ‘다이슨 크루소’를 만들었던 경험이 너무 좋았었다. 단순히 완성된 게임을 제출하고 끝나는 공모전이 아니라, 게임 개발 과정이 공모전 기간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완성까지 가는 경험은 보드게임 작가로서 너무 값진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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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닉네임 ‘레이지니(Lazy + Jini)’가 말해주듯이 기본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PNP게임을 해보려고 할 때 가위나 칼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귀찮아 한다. 설사 내가 만든 게임일지라도 그렇다. 더구나 완성도 안된 프로토타입(Prototype)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에너지가 적게 드는 형식으로 게임을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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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귀찮음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느 분야든 테스트를 위한 프로토타입에는 공이 많이 들어가면 안된다. 한 지인 분은 이를 “프로토타입에 자신의 에고(ego)가 들어가면 안된다”고 표현하셨다. 자신이 많은 에너지나 시간을 쏟은 대상일 수록, 버리거나 통채로 갈아엎는 것이 심리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매몰 비용이 클수록 손절하기 힘든 법이니까.

물론 그 에너지와 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지 않다. 사람마다 자신의 기준을 알아내야 한다. 이는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정확하다. 내 경험상 나의 기준은 상당히 높았다. 나는 가위질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출력만 하면 곧장 플레이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다이슨 크루소의 초기 프로토타입도 이와 같은 유형이었다. 이런 유형이 아니면, 내가 프로토타입을 2번 이상 만들어 고친 기억이 거의 없다. 나의 이런 성격이 만들 수 있는 게임 구조를 결정하게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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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성격도 크게 영향을 줬다. 나는 게으르면서도 동시에 성격이 급하다. 무엇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 즉시 시도할 수 있어야 했다. 즉, 프로토타입을 만들자마자 즉시 테스트를 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만들 의욕이 사라진다. 그래서 만들자마자 플레이 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다. 바로, 1인플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하는 집돌이며, 동시에 게임 취향도 상호작용이 적은 벽 게임들을 좋아한다. 게다가 나의 미완성된 게임을 다른 사람에게 플레이하게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상대방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 또 그런 걱정을 하는 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여러가지로 1인플 게임은 나에게 최적인 게임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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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출력하면 즉시 플레이’ 할 수 있는 ‘1인용 게임’으로 게임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내가 한 번 마음을 먹은 날이면 “프로토타입 제작 → 테스트 → 규칙 수정 → 프로토타입 제작 → 테스트 → 규칙 수정 → …”이라는 루틴을 한 3~4시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하면서, 게임이 매우 빠르게 다듬어진다.

특히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보통 테스트를 끝까지 하지 않는다. 처음 몇 턴 만 진행해봐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곧장 깨닫는다. 참 신기한 것은 테스트 전까지는 전혀 이런 문제들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첫 번째 테스트 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이 파악된다. 이 때가 게임 개발의 50% 정도를 차지한다고 난 생각한다. 따라서 가능한 머릿 속으로 오래 고민하기보다, ‘지금 당장 테스트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고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초기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는, 게임 전체 규칙을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 심하게 말하면 오직 한 턴 만 플레이 가능한 수준이어도 괜찮다. 그 한 턴 플레이 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프로토타입을 만들면 된다. 아얘 다른 방향으로 바꿀지, 조금 살을 붙여볼지.

‘빠른 플레이 테스트’, 이는 게임 디자인에 대한 서적들과 디자이너들의 조언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이를 조금 다르게 ‘빠른 테스트를 위해서, 다른 모든 요소들을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게임이라 보기 힘든 수준이어도 괜찮다. 일단 눈에 보이게 만들어서, 주사위를 굴려서 플레이하는 척이라도 해보라. 이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라 확신한다.


<aside> 💡 다음 편: 다이스 타이니 타운이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어떤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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